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문단 편집) === 쿠데타와 철권통치 === [include(틀:관련 문서, top1=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 || [[파일:7FsC0W7ZaBudmFIA.jpg|width=285]] || || '''1977년 3월 24일, 쿠데타 1주년 기념식에서의 비델라''' || 1976년 3월 24일 [[미국]] [[CIA]]의 지원 아래 "좌익세력의 폭력적 위협이 심각하다. 신의 도움에 힘입어 완전한 국가 회복을 이룩하고 국민에게 혼란과 부담을 안겨주었던 상황을 종식시키겠다"면서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 페론을 몰아냈다. 비델라는 쿠데타를 일으킨 하루 동안 의회를 폐쇄하고 모든 정당을 해산했으며, 국회의원들을 체포해 구타한 후 문자 그대로 '''의회 문과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는''' 수백 명의 일반인들을 거리에서 납치한 후 고문하는 숨가쁜(?) 일정을 거쳤다. 비델라는 헌법의 주요 조항들을 정지하고 국가재건과정(Proceso de Reorganización Nacional)이라는 이름이 붙은 군부정권을 수립했다. 대통령은 군부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군사평의회에서 지명되었고, 비델라는 이 과정을 통해 쿠데타 5일 뒤인 1976년 3월 29일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3월 31일에 비델라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에게 인권 존중은 법적 의무나 국제 선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로서의 인간의 탁월한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심오한 기독교적 신념의 결과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처음에 비델라는 단기간에 이사벨 페론 하의 경제난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비델라를 비롯한 군부는 '사회 혼란 종식'을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것이 이뤄질 경우 민정 이양을 약속했다. 그러나 군부가 이를 지킬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비델라의 호언장담과 달리, 비델라의 5년에 걸친 통치는 '혼란과 부담을 안겨주었던 상황'을 종식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시켜 퇴임 4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여파가 지속되게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